효창공원 유래

효창공원은 조국의 독립을 위해 몸 바친 애국지사들의 유해를 모신 유서 깊은 장소로, 1989년 6월 8일 국가지정유산(사적)으로 지정되었다.

원래는 효창원으로, 정조의 큰아들인 문효세자와 그의 어머니 의빈 성씨 등 왕가의 묘를 모신 곳이었다. 효창원은 일제강점기에 들어서부터 훼손되기 시작하였고 1944년에는 일제에 의해 왕가의 묘들을 강제로 서삼릉 (경기도 고양시)으로 이장 후 공원으로 조성되었다.

광복 후 1946년에는 김구 선생의 주도로 일본에 있던 이봉창, 윤봉길, 백정기 의사의 유해를 국내로 모시고 와 그해 7월 6일 국민장을 치른 뒤 효창원 안의 옛 문효세자 묘역에 안장하였다. 안중근 의사는 유해를 찾지 못해 향후 유해를 찾으면 안장하기로 하고 세 의사 묘 옆에 가묘를 만들었다.

이후 김구 선생의 주선으로 중국 땅에서 순국한 이동녕, 차리석 선생의 유해를 봉환하여 1948년 9월 휘문중학교 교정에서 사회장을 치른 뒤 효창공원에 안장하였고, 다음 달인 10월에는 귀국한 뒤 서거한 조성환 선생의 장례를 경성부민운동장에서 사회장으로 치른 뒤 안장하였다. 임정 요인의 묘역은 옛 의빈 성씨의 묘터에 만들었으며, 묘역 주변이 현재와 같이 조성된 것은 1991년 11월이다.

마지막으로, 1949년 6월 26일 김구 선생이 경교장에서 안두희의 흉탄에 맞아 서거하여 7월 5일 국민장으로 장례를 치른 후 이곳에 안장하였다.

이처럼 효창공원은 조국 독립을 위해 투쟁한 애국선열들의 유해를 모신 뜻깊은 장소로 이후 우리나라 독립운동을 대표하는 국가유산으로 자리 잡게 되었다.